비트매니아(beatmania)를 기억하십니까? 대전 격투 게임이 주류였던 1997년의 오락실에 홀연히 나타나 한동안 게임계의 주류를 리듬 액션 게임으로 바꿔버린, 그야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게임이지요. 비트매니아로 시작된 리듬 액션 게임의 열풍은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 Dance Revolution)의 출시를 기점으로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렀고, 우리는 DDR이라는 약자에서 더 이상 동독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지금은 DDR이라는 약자에서 이 게임이 아닌 다른 것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beat 뒤에 따라붙는 mania라는 단어의 숙명 때문이었으려나요? 한때 오락실을 무도회장 겸 각종 악기 연습장으로 만들었던 리듬 액션 게임은 서서히 시대의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장르 전체의 매니아화가 가속되었습니다. 난이도를 나타내는 별의 갯수는 성조기 왼편에 찍힌 것 만큼이나 늘어났고, 처음 동전을 넣어 본 초보자들은 5분도 안 되어서 소위 '폭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요.
일본어로 손가락을 가리키는 '유비(ゆび, 指)'와 beat의 합성어인 유비트는, 아케이드 시장에 리듬 액션 게임이라는 장르를 들여온 코나미에서 3년만에 출시하는 완전 오리지널 리듬 액션 게임입니다. 자신들의 beat로 일으켰던 리듬 액션이라는 장르를, 다시 한번 새로운 beat로 살려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이름이라고나 할까요?
직관적인 게임성이 초보자를 부른다
유비트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현재의 주류 리듬 액션 게임과는 전혀 다른 직관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들 수 있습니다. 마치 쥬크박스와도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 동체에는 가로 세로 각각 4줄씩 16개의 사각형 패널이 달려 있으며, 패널 아래에는 큰 화면이 깔려 있어 마치 패널 안에 조그만 화면이 들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지요. 음악에 맞추어 버튼 안의 스크린에 해당 패널을 터치하라는 마커가 표시되고, 이 마커가 표시된 패널을 정확한 타이밍에 눌러서 점수를 얻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 규칙입니다.

유비트의 동체 외관(좌측)과 플레이 화면(우측)

정확한 타이밍에 마커를 터치하는 것이 중요
※ 위 플레이 동영상은 일본 웹진 gigazine.net에서 YouTube에 업로드한 것입니다.
리듬 게임을 처음 접해 보는 플레이어라도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듯이 화면에 뭔가가 표시되면 바로 그 자리를 누르면 되기 때문에(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경우 점수를 덜 받기야 합니다만), 유비트는 상대적으로 다른 리듬 액션 게임들보다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EZ2DJ나 드럼매니아(DrumMania) 등의 기존의 리듬 액션 게임은 제일 쉬운 모드로 해도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있던 저도, 유비트에는 금방 익숙해져서 현재 최고 레벨인 EXTREME을 주로 플레이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유비트의 초보자를 위한 게임 설계는 게임 오버의 개념을 봐도 잘 드러납니다. 일반적인 리듬 액션 게임의 경우에는 한 곡이 시작될 때 100%의 게이지를 가지고 있다가 실패를 많이 하면 게이지가 줄어들고, 게이지가 0이 되면 그 자리에서 게임 오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하지만 유비트에는 이러한 게이지 개념이 없으며, 한 번 플레이했다면 무조건 한 곡이 끝날때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곡이 끝났을 때의 최종 점수가 얼마냐에 따라 성공/실패가 갈리는 방식이지요. 700000점 이상이면 성공하여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것이 기본 설정이고, 모든 곡의 최고 점수는 1000000점입니다. 또한 e-AMUSEMENT PASS 카드(후에 설명)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1 스테이지에서 실패하더라도 무조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어, 실수로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곡을 골라 버린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잘 되어 있지요.
익숙한 곡과 새로운 곡의 만족스러운 균형
유비트의 수록곡은 현재(리뷰 작성시 기준) 총 59곡으로, 코나미 소속 아티스트들이 작곡한 오리지널곡과 유명 가수의 노래를 그대로 수록한 라이센스곡, 그리고 원래 가수의 곡을 다른 사람이 부른 커버곡의 3종류입니다. 난이도가 낮아 초기에 주로 플레이하게 되는 곡은 대부분 라이센스곡 아니면 커버곡으로, '천체관측(天体観測)'이나 '전력소년(全力少年)' 등의 유명 J-POP이나 'Y.M.C.A.'같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올드팝이 주류를 이룹니다. 처음에는 쉽고 친숙한 곡을 플레이하며 게임에 익숙해지다가, 초보자에서 벗어나 조금씩 어려운 곡을 플레이하게 되면 자연스레 오리지널곡의 비중이 커지게 되는 거지요. 또한 최고 난이도인 EXTREME에 진입하게 되면 어느 곡이던 가릴 것 없이 난이도가 급상승하기 때문에, 한동안 안 하던 초보곡도 새로운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존에는 쉬운 커버곡이던 A Perfect Sky도 EXTREME에서는 레벨 8짜리 어려운 곡(최대 레벨 10)
눌러라, 즐거워지리라
일본의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접한 얘기입니다만, 무언가 튀어나온 것을 누르는 행위는 일종의 본능적인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나 리모콘의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부터, 흔히 뽁뽁이라고 불리는 포장용 에어 쿠션 비닐을 터뜨리는 것 같은 게 이에 해당된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건 인간만의 본능이 아니라 소위 영장류라 불리는 동물들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해당 프로그램에서 침팬지에게 뽁뽁이를 주자 아주 신나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터뜨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비트가 다른 터치형 리듬 액션 게임과 차별화되는 큰 요소 중 하나로 저는 바로 이 '누르는 즐거움'을 들고 싶네요.
앞서 설명한 16개의 패널은 눌러지는 깊이는 얕습니다만 그만큼 재빨리 연타할 수도 있으며,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는 것보다 조금 약한 정도의 자극도 쉽게 인식하는 괜찮은 감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퀴즈 대회에서 정답 버튼 누르듯이 손 전체로 탁탁 치면서 플레이하다가도,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마치 연주를 하듯 손가락 몇 개로 살짝살짝 눌러가며 플레이할 수 있게 되지요. 난이도가 높고 연타 위주인 곡을 플레이하다 보면 마치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국내의 e-AMUSEMENT 신호탄
어느새부터인가, 아케이드 게임은 온라인과 카드 시스템을 빼놓고 생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전용 카드를 구입하여 자신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온라인을 통하여 대전이나 전적 비교를 하는 이러한 흐름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4(Virtua Fighter 4)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대중화되어, 요즘에는 오락실 인기작 중 온라인과 카드 시스템 둘 중 하나도 채용하지 않은 게임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지요. 유비트도 이 흐름을 따라 온라인과 카드 시스템 양쪽을 채용하고 있으며, 코나미의 온라인/카드 시스템 통합 서비스인 e-AMUSEMENT의 첫 한국 진출작이기도 합니다.
e-AMUSEMENT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용 카드인 e-AMUSEMENT PASS를 구입할 필요가 있으며, 이 카드를 한 번 구입하면 유비트 말고도 다른 모든 e-AMUSEMENT 대응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게임의 전용 카드처럼 사용 가능 횟수 제한도 없지요. 하지만 e-AMUSEMENT는 다른 카드 시스템과 달리 카드 내부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코나미의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기 때문에, 마지막 플레이 이후 180일이 지나면 데이터가 삭제되어 버리는 단점도 있습니다. 유비트의 경우 e-AMUSEMENT PASS를 사용하지 않으면 플레이할 수 없는 곡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 게임을 제대로 하려면 필수인 카드라고 할 수 있지요.
유비트가 지원하는 온라인 기능은 온라인 대전 플레이와 신곡 업데이트의 2가지입니다. 대전 플레이의 경우 일본/홍콩/마카오/대만의 플레이어와 함께 최대 4인 대전을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한국 유저가 홍콩에서 접속한 것으로 표기되었으나, 이제는 제대로 국적 란에 '대한민국'이라고 표기되지요. 대전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은 없으나, 대전 시작 전의 대기 시간 패널을 눌러서 간단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하트 모양이나 P 모양 등이 유비트 유저들의 공통적인 인사로 통하더군요.

게임 시작 시 온라인 플레이와 로컬 플레이를 선택 가능

패널부 위의 작은 화면에 다른 플레이어의 상태가 표시된다
지속성과 접근성의 딜레마
많은 플레이어들이 지적하는 이 게임의 불만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난이도입니다. 신규 유저층을 노리고 시작한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의 처음 작품 답게 이 게임의 수록곡은 대체적으로 난이도가 무난한 편이며, 어느 정도 기존의 리듬 게임을 해봤거나 천성적으로 박자 감각/동체 시력이 뛰어난 사람은 1단계인 BASIC 난이도를 건너 뛰고 바로 2단계인 ADVANCED나 3단계인 EXTREME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이러한 고수 플레이어들을 위한 배려로 제작사 측에서는 온라인 업데이트를 통해 고난이도 신곡을 제공하였지만, 한때 모든 유비트 플레이어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괴물같은 난이도의 곡 Evans마저 간단히 클리어하는 초고수들이 점점 증가해 가는 추세입니다(물론 저는 아직 무리입니다).
후속작이 이어지게 되면 처음 하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쉬운 곡 위주로 추가해 나가느냐, 아니면 꾸준히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려운 곡 위주로 추가해 나가느냐가 앞으로의 시리즈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개인적인 자잘한 불만으로는, 온라인 플레이를 할 때 표시되는 상대의 정보 중에 상대의 클래스(e-AMUSEMENT PASS를 사용해서 올릴 수 있는 일종의 레벨. D에서 시작해서 SS까지 있습니다)가 없다는 게 매우 아쉬웠습니다. 상대의 클래스가 표시된다면 대충 어느 정도의 플레이어인지 짐작할 수 있고, 자신의 클래스를 상대에게 자랑하는 재미도 있었을텐데...
잔물결을 기다리며
10자리가 넘어가는 시리즈 후속작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점점 매니악해져 가던 아케이드 리듬 게임 액션이라는 장르에, 작년을 기점으로 몇 개의 큰 돌이 던져졌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비트죠. 다행히도 유비트를 포함한 이 돌들은 그 무게만큼이나 큰 파문을 일으키며, 다시금 아케이드 리듬 액션 게임계를 시끌시끌하게 했습니다.
이 기세를 이어서 유비트가 리듬 액션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번 한 번의 큰 파문만이 아닌 지속적으로 퍼질 잔물결들(ripples)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양과 질 양면에서 더욱 발전됨과 동시에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는 후속작 jubeat ripples를, 매우 즐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 추천도 - 8/10
정말 재미있게 즐겼고, 아니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게 즐기고 있지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너무나 많다. 그래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담아 8점.